[국뷔] 관계의 모호함 1 긴 글



관계의 모호함
w. 소년


01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눈을 떴다.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떠 30분 전부터 꾸준히 울리던 벨소리의 근원지를 팔을 뻗어 집어 확인했다. 눈에 보이는 건 까만 액정에 비치는 제 모습 뿐이었다. 아, 전화가 오는 게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니까 어제 무음을 했었지, 다시 핸드폰을 제자리에 올려두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여전히 핸드폰은 울어대고 있었다. 저의 것이 아니라면 이 벨소리의 주인공은 제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잠 들어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분명히 날이 밝기 전에는 집으로 가라고 했는데 기어코 말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형은 발 밑에 있는 속옷을 발가락으로 집어 들어 올렸다. 속옷을 챙겨 입고는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의 진짜 근원지를 찾았다. 볼륨을 줄이니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등교 시간까지는 두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한 시간은 제 침대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것을 깨우는 데 쓸 것이고, 나머지 한 시간은 먹기 싫다는 밥을 먹이고, 학교에 가자고 타이르는 데 ㅡ말이 타이르는 것이지 사실은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ㅡ 쓸 예정이었다. 그리고 벨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야.”
“…”
“야, 일어나.”
“…”
“전정국, 일어나라고.”
“아, 왜.”
“왜는 왜야, 학교 안 가게? 그리고 전화 좀 받던가. 존나 시끄러워.”
“누군데.”

 슬쩍 액정을 확인한 태형은 표정을 굳혔다. 그를 확인한 정국은 제 핸드폰을 뺏어 들고 먼저 씻는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물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제 속옷을 아침의 태형이 했던 것처럼 발가락으로 들어 올려 태형에게 던지듯 건네는 것은 잊지 않았다. 태형은 옷장에서 두 벌의 교복을 꺼냈다. 대충 의자에 걸어 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다정이♡. 아침부터 시끄럽게 제 잠을 깨운 건 다름 아닌 홍다정, 정국의 여자 친구였다. 어, 자기야. 미안해 이제 일어났어. 나 태형이 형 집에서 잤어. 방 안의 욕실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태형에게까지 들렸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힌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정국이를 좋아해서. 그리고 정국이 태형의 눈치를 보며 욕실로 들어간 것도 간단한 이유였다. 태형이 형이 나를 좋아해서. 태어날 때부터 함께 살다시피 한 둘이었다. 양 쪽의 부모님 모두 캠퍼스 커플로 결혼까지 성공한 분들이셨고, 같은 과였던 네 분은 돈독했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태형을 두고 미국으로 가게 된 부모님 대신 정국의 부모님이 혼자 살고 있는 태형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형제처럼 지내던 정국을 그 이상으로 느끼게 된 건 작년부터였다. 그러니까 정국이 고1, 태형이 고2였을 때. 저보다 작았던 정국이 어느 순간부터 한 뼘 넘게 더 커 있었고, 애 같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마냥 귀엽지만은 않은 적당히 남자다운 얼굴로 성장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형이 정국의 외모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 태형은 이성애자였다. 그것도 여자라면 환장하는. 태형의 취향이 여자에서 남자로 바뀐 건, 아니 정확하게는 여자에서 정국으로 바뀐 건, 태형의 부모님이 오래 전 냉장고에 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양주를 나눠 마신 날이었다. 물론 둘 다 착실하기만 한 학생은 아니었고, 술도 몇 번 마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가난한 학생들이 친구들과 양주를 사서 마셔 본 적이 있겠는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소주, 맥주, 가끔 막걸리만 마시다가 조금 비싼 술이 입에 들어가니 기분이 유난히 좋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둘이서 한 병을 다 비운 상태였다. 마실 때는 괜찮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니 정신이 몽롱했다. 방까지 들어 갈 정신도 없어서, 태형은 그냥 거실 바닥에 누워버렸다.

「양주 먹고 취하면 장난 아니래.」
「알아, 그래서 형 지금 발음도 장난 아니야.」
「넌 왜 안 취했냐? 존나 억울해.」
「취했어.」
「뻥 치네, 멀쩡하면서.」
「아냐, 진짜 취했어. 보여 줄까?」

 뭘? 이라고 되묻기도 전에 이미 입술이 닿아 있었다. 뽀뽀야 뭐, 아주 어렸을 적 다퉜을 때마다 부모님들이 화해 방법으로 자주 썼던 거였다. 이렇게 자라서 다 큰 애들이 뽀뽀를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형제 같은 동생과 뽀뽀를 하는 게 어때서, 하고 태형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이상했다. 단순한 뽀뽀가 아니었다. 뽀뽀가 원래 혀끼리 하는 건가? 아닌데, 여자 친구들이랑은 이걸 키스라고 했는데. 취한 태형은 생각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키스를 하다 정신을 다잡아 보니 둘 다 옷이 벗겨져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허리 아래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아, 그러니까. 잤다. 정국이랑 내가. 아니, 그냥 잔 것도 아니고. 했다. 섹스를. 태형은 머리를 쥐어 뜯었지만 정국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형이 나 취한 거 안 믿었잖아. 그리고 할 수도 있지, 뭐 어때. 뻔뻔했다. 그냥 뻔뻔한 것도 아니고 존나 뻔뻔했다. 존ㅡ나.

 그 후로 태형은 여자를 만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여자들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생각했으나, 책상 앞에 앉아 곰곰히 생각한 결과 그것만은 아니었다. 좋았다. 그 날의 키스도 그렇고, 섹스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국이 좋아졌다. 티를 안 낸다고 안 냈지만 눈치 빠른 전정국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둘은 종종 키스를 했고 물론 잠자리도 함께 했다. 태형은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짝사랑이야 뭐, 상관 없었다. 하지만 조금 억울한 것은 정국에게 목을 매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정작 정국은 여전히 형제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 억울했다. 그리고 정국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도.

“형.”
“…”
“김태형.”
“…”
“야. 이제 너 씻어.”
“야? 야라고 했냐?”
“아까부터 불렀는데 멍청하게 있길래.”

 의자에 걸려 있는 저의 교복을 챙겨 입으며 정국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한 번 찼다. 그런 정국을 노려본 태형은 욕실로 들어 갔다. 형, 나 먼저 간다. 다정이 친구 오늘 아파서 혼자 가야 된대. 밖에서 소리 치듯 이야기 하는 정국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났다. 태형은 괜히 샤워기를 욕실 문을 향해 세게 틀었다. 문을 정국이라 생각하고 뿌려대던 태형이 이내 흥미를 잃고 샤워를 했다. 정국은 가끔 이렇게 자신을 서운하게 했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와 함께 등교를 하는 것 자체에 서운한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하던 등굣길을 혼자 간다는 것에 서운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정국은 간혹 여자 친구 때문에 벗어나곤 했다. 예를 들면 오늘 같이 먼저 등교를 하거나, 비가 오는 하굣길에서 우산이 없는 저를 두고 여자 친구가 우산이 없다며 가버리던가 하는 것들. 서운한 것을 꼽자면 열 손가락, 발가락까지 쓰고도 모자랄 일이었다.

 생각보다 등교 시간이 빨라졌다. 태형은 힘 없이 집을 나섰다. 함께 하는 등교에만 익숙하다 혼자 가려니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현관문을 닫다가 손가락이 끼일 뻔 했고, 계단을 내려 오다가 넘어질 뻔 했다. 대문을 열다가는 손톱이 부러졌다. 이게 다 망할 전정국 때문이야, 태형은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지 않고 정국을 탓했다. 부러진 손톱을 마당에다 던지고 태형은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대문 앞에 서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사람이 팔목을 잡아 당겨 뒤로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 놀래라!”
“씻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몸뚱이도 작으면서.”
“아, 야! 진짜 놀랬어. 존나 놀랬어. 아, 미친.”
“그러게 앞을 좀 봐라, 발만 보지 말고.”
“다정이 데리러 간다며.”
“그러려고 했는데 형이 대답을 안 했잖아.”

 그랬었나. 곰곰히 생각하니 정국이 간다고 얘기했을 때 죄 없는 욕실 문에다가 화풀이를 하느라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물론 대답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건. 통보하듯이 먼저 간다고 하질 않았던가. 그래서 다정이한테 형이랑 간다고 했어. 이어지는 말에 태형은 조금 감동을 받았다. 사실은 조금 많이. 정국은 태형의 팔목을 잡고 있는 그대로 앞장섰다. 태형은 정국의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저를 끌고 가듯이 하는 행동 때문에 급하게 발을 움직였다.

 정국은 가끔 저를 서운하게 했지만 그것보다 더 가끔 자신에게 감동을 줬다. 서운한 점은 오늘 안에는 다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감동을 받은 점은 1분 안에 이야기가 다 끝날 수 있을 정도로 적었지만 태형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것은 후자였다. 그래서 태형은 정국을 좋아하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덧글

  • ㅅㄴ 2016/04/26 00:57 # 삭제 답글

    ㅜ ㅜ 우연히 보게됐는데 넘나 좋네요 ㅠ 왜 1편 뿐이조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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